전국연합뉴스 칼럼리스트 박기성 기자 | 우리지방 사회평신도부 총무님이 식혜를 만들어 보내셨습니다. 물론 내게만 보낸 것은 아니고, 지방 모든 목사님들께 보내셨습니다. 식혜는 고두밥에 엿기름 우려낸 물을 부어 삭힌 음식입니다. 이것을 우리 고향 익산에서는 ‘감주(甘酒)’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식혜와 감주를 구분하기도 합니다. 좁은 의미의 감주는 엿기름 대신 누룩을 넣고, 이것을 더 발효시키면 알코올 형태가 됩니다. 그래서 ‘단술(甘酒)’입니다. 어떤 시인은 식혜 속에 ‘단맛’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아린 맛’도 들어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식혜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식혜는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아린 맛’이 큽니다. 어머니는 명절 때마다 식혜를 만들어 두 아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시기에 식혜를 만들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더 이상 어머니의 식혜를 맛 볼 수 없습니다. 더울 때는 냉장고에서 꺼내어, 추울 때는 살얼음과 함께 마신 식혜는 그냥 음식이 아닙니다. 고향이자 그리움입니다. 그런데 식혜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엿기름입니다.
전국연합뉴스 칼럼리스트 박기성 기자 | 치과에 가서 이(齒)를 뽑았습니다. 10년 여 년 전부터 뽑아야 한다고 그랬는데 지금까지 와 주었으니 오래 버텨 주었습니다. 이를 뽑으면서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에는 너나할 것 없이 대부분 유치(乳齒)를 뽑을 때 실에 묶어 잡아당겨 뽑았습니다. 그렇게 뽑힌 이빨은 초가지붕 위로 던져졌습니다. 그래야 튼튼한 새 이빨이 난다면서요. 그러한 행동의 의미를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감염주술(contagious magic)’이었습니다. 지붕에는 쥐가 많이 살았습니다. 설치류(齧齒類)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쥐는 튼튼한 이빨을 가진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빠진 이빨을 지붕 위에 던져주면 쥐가 그것을 물어가게 되고, 그러면 쥐의 이빨처럼 아이에게도 튼튼한 이빨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다래끼가 난 사람이 속눈썹을 뽑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의 돌 위에 올려놓고 다른 사람이 그 돌을 차게 함으로 다래끼가 그 사람에게로 옮겨가게 하는 믿음과 아들을 많이 낳은 부인의 속곳을 훔쳐 입음으로 자신도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생각도 감염주술의 좋은 예입니다. 그런데
전국연합뉴스 칼럼리스트 박기성 기자 | 남 권사님으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커다란 붕어 사진을 찍어 보내셨습니다. 남 권사님이 사시는 아파트 바로 앞에는 유등천이 흐릅니다. 남 권사님의 남편 되시는 윤 권사님은 시간 여유가 날 때면 이곳에서 낚시를 하십니다. 윤 권사님이 붕어를 낚으신 모양입니다. 붕어 사진 아래에는 “윤 권사 2마리유~”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종종 팔뚝만한 붕어를 낚았다며 자랑을 하시곤 했는데, 드디어 실물 사진을 내게 보내어 증명하신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던 예수님은 호수에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부 출신의 베드로와 안드레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번역에서 ‘낚는’의 어감(語感)이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낚다’라는 표현이 오늘날에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이스 피싱(voice fishing)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속아서 피해를 당했을 때에 “낚였다”라고 표현합니다. 차라리 존 로스가 번역
전국연합뉴스 칼럼리스트 박기성 기자 | 100주년기념교회를 퇴임하고 경남 거창으로 낙향하여 살고 있는 이재철 목사가 작년(2020년)에 한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합천 해인사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주인과의 대화로 시작했습니다. 50대의 찻집 주인은 해인사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성입니다. 그분이 어릴 적에 친구들과 백련암(白蓮庵)을 찾아가면, 성철 스님이 언제나 반가워하며 사탕을 주셨다고 합니다. 당시 외딴 마을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사탕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녀는 사탕이 먹고 싶으면 한 시간 길을 멀다 않고 백련암을 찾았고, 성철 스님은 그 소녀를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 매번 사탕을 주셨습니다. 성인이 된 그 분은 결혼과 동시에 서울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해인사의 숨결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마음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나기만 했습니다. 결국 그분은 자식을 결혼시킨 후 남편의 양해 하에, 십 년 전부터 해인사로 내려와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 중입니다. 해인사에 오랫동안 살아온, 그분은 많은 스님들의 일화를 알고 있습니다. 이재철 목사가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요즈음 스님들은 어떠세요?” 그러자 오히려 그분이 이
전국연합뉴스 칼럼리스트 박기성 | 가깝게 지내는 몇몇 목사님들과 안부 전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공통된 말들이 있었습니다. “말세 인가봐!” “종말이 오긴 오려나봐!”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두고 한 말들입니다. 전대미문의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이 그렇고, 기후변화로 인한 화재와 홍수가 모든 대륙에 걸쳐 발생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모든 현상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수록 두렵고 떨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현상 자체보다도 더 두렵고 떨리는 것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사는 대전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염려가 되어 코로나 검사(PCR)를 선제적으로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보건소에 가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뒤에 서서 대기하는 동안 괜히 마음이 떨렸습니다. 코로나 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적도 없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 간 적도 없지만 혹여나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오면 어쩌나!’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