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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안간증] “낮은 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섬기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을 만나도 순종하며 따르겠습니다”

버팀목교회 문차선 사모

 

전국연합뉴스 김혜영 기자 | 저는 돌 때 부터 소아마비를 앓았던 지체 장애 4급의 장애인입니다. 어린 시절 언니들의 손을 잡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저는 사모님의 삶이 너무 힘들어 보여 사모는 절대절대 안 하고 평신도로 열심히 섬기며 신앙생활 하겠노라 결심했는데 22살 큰 교통사고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낮은 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섬기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목회를 하는 목사님을 만나도 순종하며 따르겠습니다” 하는 서원기도를 겁 없이 담대하게 했습니다.

 

24살 보육원의 보모로 들어가 유치부 아이들과 몇 년 생활하다 교회 청년회에서 만난 특수목회를 계획하고 공부를 하는 신학생과(현 오재현목사님) 결혼하고 몇 년 후 배우자의 사역인 노인복지 사역에 뛰어든 지 22년차. 되돌아보니 참 먼 길을 왔습니다.

 

처음 노인 사역에 뛰어들 때 만해도 참 열악했습니다. 직원 4명이 45명의 어르신 수발을 다 들어야 했습니다. 그중에도 비위가 약해 헛구역질을 잘하는 저는 어르신들의 기저귀 케어가 참 걱정이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상황으로 하나님은 저를 바꾸셨습니다. 내가 밥을 안 하면 어르신들이 굶어야 하고 빨래를 안 하면 입을 옷이 없고, 기저뀌 를 안 갈아주면 축축하기에 있어야 하기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저를 변화시켰고 하나님께서 코를 막아주셔서 냄새를 느끼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몇 년을 365일 쉬는 날 없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힘없는 다리로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다 보니 새벽에 일어날때마다 온몸이 아파서 울면서 일어나야 했던 시간들이 었습니다.

 

한번은 일하던 중 실신을 해서 119로 병원에 실려간 응급실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리려 하는데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과로에 탈진이 왔다며 링거 맡고 집에가서 쉬면 된다는데 그 말이 어찌나 서운했는지 “하루만 병원에 입원하라고 하지 집에가면 바로 밥하고 빨래해야 하는데.”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때는 힘들다고 하는 자체가 사치었고 저희 부부는 서로 “힘들지?” 하고 위로의 말한마디 못할 상황으로 서로 너무 힘에 버거워 옆을 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어도 우리에게 맞겨주신 양이기에 일할 수 있고 원장목사로 섬길 수 있는 사역지가 있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30대 중반을 4년을 그렇게 선교회 요양원을 섬기던중 하나님께서 개척하여 떠나라는 마음을 자꾸주셔서 선교회와 관계가 좋을 때 떠나자 하고 개척을 하여 충남 예산에서 사역한지 17년이 되었다.

 

작은땅을 구입하고 양로원을 세웠는데 몇십 명을 섬기던 바쁨이 사라지고 시간의 여유가 생겨 독거 어르신 밑반찬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벌써15년째 24가정에 매주 목요일마다 직접 만들어 배달을 하고있다. 

 

53세의 나이 저를 되돌아보면 좋은옷, 비싼가방, 비싼보석을 가져본적이 없지만 가져볼 욕심도 없습니다. 돈의 여유가 있든지, 큰 돈이 생기면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도와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쓸만큼만 아껴쓰고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라는 뜻으로 알기에 순종하며 나누고 살아갑니다.

 

주변에서는 미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사모님을 위해서 투자좀하세요”라고 하지만 이세상 호화로움 보다는 천국의 상급을 사모하기에 앞으로도 쭉~ 어려운 이웃과 힘들게 목회하시는 가정에 사랑을 나누며 욕심없이 살아 가려고 합니다.
 
둘째아이 말을 배우면서부터 한지붕아래 어르신들과 같이 숙식을 하다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인지 남녀노소 누구와도 잘어울리는 좋은 성격들을 가지고 있고 엄마, 아빠의 사역이지만 어려서부터 어르신들의 심부름과 식사수발, 대소변냄새가 나면 제 귀에대고 살짝 이야기해주고...

 

작은 역할들을 많이 감당해주던 아이들이 이제 벌써커서 아들은 군대도 다녀오고, 취직도 해서 빠른결혼과 함께 아이도 낳고 잘살고 있고, 딸은 학교졸업하고 벌써 직장인이 되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전 딸이 “나는 시집가면 엄마처럼 열심히 살면서 아이들을 엄마처럼 잘키울 자신이 없어!”,  “엄마는 하나님이 맡겨주신일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이 너희들 다 키워 주신거야 우리 딸도 잘할수 있어”라고 했다.

 

학교보낼 때 물질적인 뒷바라지는 못해줘서 한편으로 부모로서 미안한데 아들녀석 장인어른의 첫대면 첫질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저희 부모님이요”라며 왜 존경하는지의 대답에 다른 질문 필요없이 통과 했다고 하네요.

 

항상 평안한 가정에서 따뜻한 사랑을 많이 받고 하나님 사랑안에 자란것에 감사하며 틈만나면 부모님일을 도와줄려고 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어르신들을 모시는 사역을 하면서 짧게는 몇 달, 몇 년, 길게는 18년을 모시던 어르신도 있는데 이분들의 마지막을 책임지며 천국소망 심어주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면서 교회를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어르신이 이곳에 와 하나님을 알고 자녀들이 면회오면 “아들아 교회 나가라 참 좋다” 라며 말씀하실 때...

 

송년예배때 “1년동안 감사한 일 한가지씩만 말씀해보세요” 하면 이곳에 와서 “목사님 사모님, 좋은 직원들 만나서 감사하고, 하나님을 알게되서 감사해요”라는 고백들을 들을 때, 보람도 느끼고 아프신면 기도해달라고 하시고, 입소전 강팍했던 어르신이 두세달만 지나면 자녀들이 “우리 엄마 너무 온순해 지셨어요”하시기도 하시고... 

 

임종기도 해드리면 힘없는 목소리로 “아멘” 하시면서 편안한 모습으로 소천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의 감사하는 마음이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나도 명절때면 인사하러 오시는 분도 계시고 지나가다 엄마 생각나서 왔다며 어르신들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박스로 사들고 오셔서 놀다 가시는 분도 계시고... 

 

전화해서 소소한 이야기로 정을 나누며 엄마를 추억하는 분들도 계시고 다양하게 연결되어져 옵니다. “돌아가시기전 엄마 소원이 아들 교회나가는 거였어요”하고 엄마가 보시던 성경책도 아들에게 전해드리고, 잔잔하게 전도도 해 봅니다.

 

저희부부의 작은 소망 하나가 요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작은 예배당을 지어 한달에 한번이라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자녀들을 초대해 어머님의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 함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민들에게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문턱이 없는 교회를 만들어 주님을 모를는 분들도 편안하게 들어올수 있는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건축비가 부담이 되어 미루었던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올봄 시작하여 90%정도 건축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건축비를 충당하고자 하나님께서 달란트로 주신 목사님의 그림을 판매하고자 전시회를 계최하여 7월 30일까지 아트진 갤러리에서 지난주부터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목사님 사모님들과 많은 지인분들, 그리고 예산지역 감리교 장로연합회 임원단께서도 방문하여 위로와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귀한 사랑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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