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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박기성 칼럼] 산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오래 전에 <염쟁이 유씨>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염쟁이는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싸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이 연극에서 염쟁이 유씨가 친아들의 시신을 염하면서 내뱉는 대사들은 관객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자면, “죽는다는 것은 생명이 끝나는 거지 인연이 끝나는 게 아니야”라는 대사입니다. 그렇지요. 죽는다는 것은 죽은 당사자의 목숨이 끊어진다는 의미이지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끊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무려 159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참사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왜 그런 곳에 가서 저런 일을 당했을까’라며 그들에 대해 조금은 곱지 않게 여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날 행사에 대해 너무나 안일하게 대처했던 관계기관의 행태와 사고 후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 심지어 거짓말을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방송에 나와서 죽은 이들에 대한 좋지 않은 말들과 유가족에 대한 부족한 배려, 그리고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관계당국에 대한 서운함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던 어느 유가족의 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립니다. 

 

<1899>라는 독일 드라마가 있습니다. 1899년에 케르베르스호라는 뉴욕행 증기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드라마입니다. 화재로 아내와 세 자녀를 잃은 아이크 선장이 모라 프랭클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를 잃어본 적 있습니까? 죽은 이들과 함께 죽는 것 같죠. 그들은 떠날 수 있어도 난 갇혀 버립니다.”


누군가 죽으면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도 그와 함께 죽는 것 같은 아픔을 겪습니다. 그래도 죽은 이는 낫습니다. 그는 떠날 수 있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아픔과 슬픔이라는 감옥 속에 갇혀버리기 때문입니다.

 

159명의 아들딸을 잃은 부모들도 슬픔의 감옥에 갇혀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공감(共感), 즉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죽은 이를 위해서, 아니 남아있는 산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염쟁이 유씨는 말합니다. “죽은 사람 때문에 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더 소중한 거여.” 독자(獨子)를 잃은 나인 마을의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눅 7:13)며 위로해 주신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요?

 

분명 예수님도 나인 마을의 과부와 함께 눈물을 흘리셨을 겁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는 것. 


이웃에게는 이것이 사랑이고, 목회자에게는 이것이 목회이고, 정치가에게는 이것이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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